막걸리 건배.JPG

 

 

술의 어원은 수블(불과 같이 타는 듯한 느낌의 물) →수울→술 로 변한 것으로 추측한다.

 

BC2333 ~ BC238 고조선

 

 

BC238 ~ BC50년대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인 삼한시대때부터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며 맑은 곡주를 빚어 신에게 바치고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술은 당원이 될수있는 원료로 만들어지는 저효율에 식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쌀이나 밀 등의 곡물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일반 백성은 술을 빚지 못하였고 종교행사 직후에나 술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그리고 삼한의 농경의례 등 부족국가시대의 제천의식에 마을 단위로 술을 빚어 음주와 가무를 한 기록이 있다. 


BC50년대 ~ 918 년대의 삼국 시대에는 귀족 중심으로 술을 자가 제조해 소비하였고, 술집에서는 대량으로 술을 빚어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918 ~ 1392 고려시대에는 불교에 영향으로 술보다는 차가 발달하였고  고려 말 몽고 침입의 영향으로 소주가 들어게 되었다. 


1392 ~ 1910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청주, 소주와 같은 제식용  술이 발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소주가 상당히 고급주이며 약용주로서 귀족들이나 마실 수 있었던 술입니다. 


1910 ~ 1945 일본의 조선 침탈 시기에는 세원 확보를 위해 1909년 일본에 의해 주세령이 시행됩니다. 일제는 1916년부터 일반인들의 양조금지령을 내리고 강제단속을 시작, 수천여종에 이르는 전통 가양주를 밀주로 전락시키고 우리의 술을 약주, 막걸리, 소주로 획일화하였다.


해방 후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서양 술이 들어오기 시작, 고급양주를 마시는 것이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서민들은 막걸리를 제조해 마시는 정도였다.

 

1920년 이후 누룩(곡자)을 사용하기보다는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흑국, 백국, 황국 등의 국(Koji) 이용법으로 양조방법이 변화

 

1945년 해방 후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서양 술이 들어오기 시작, 고급양주를 마시는 것이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서민들은 막걸리를 제조해 마시는 정도였다.

1960년대에는 경제개발의 붐을 타고  술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 면 단위마다 양조장이 생겨났다.
1965년에는 정부의 양곡 정책으로 쌀이나 보리 등의 곡물을 술의 원료로 쓸 수 없게 되어 희석식 소주가 대량 공급되었다.
1970년대에는 군사독재, 야간통행금지, 카바이트막걸리 등의 이유로 시장 점유율 80%의 막걸리 판매량은 급속하게 줄고 빨리 취할 수 있는 소주의 판매량이 증가

1982년 야간통행금지가 해제 되고 경제성장의 이유로 맥주와 양주의 소비량 증가

1986년 전통민속주의 양조기능보유자를 찾아내어 중요 무형문화재로지정, 향토술 제조 기능 보유자로 인정

1988년 민속주 전승, 보급에 장애가 되어 왔던 주세법 중 일부 관계 법규를 개정, 제한적 민속주 판매보급길이 열림

1989년 24종의 민속주 시험제조 허가, 제조면허, 판매허가 개방

1991년 새로운 주세법 시행으로 전통민속주의 다향한 향토주가 제조 시판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룸살롱, 나이트클럽, 캬바레등의 심야영업 금지가 해제 되면서 밤문화의 최전성기를 맞아 술에 판매량도 증가

1993년에는 알코올 농도가 17% 이상인 술은 TV나 라디오 등 전파매체를 통한 광고 선전을 할 수 없게 금지

2009년 한류와 웰빙등의 영향으로 전통주 특히 막걸리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하면서 판매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어 제2의 막걸리 부흥기를 노리고 있다.